축구 전술의 역사와 변천

축구의 전술은 경기 규칙의 변화와 시대별 축구 철학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본 리포트에서는 고대에 해당하는 초기 축구 규칙과 포지션 체계부터 현대의 유동적 전술 시스템까지 시대순으로 살펴보고, 각 시대를 대표하는 전술적 변화(포메이션 변화, 오프사이드 규칙 개정 등)와 주요 전술가들의 철학을 분석한다. 아울러 2–3–5, WM, WW, 4–2–4, 카테나치오, 토털 풋볼, 4–4–2, 4–2–3–1, 티키-타카, 게겐프레싱, 3백 전술 등의 핵심 전술 시스템의 특징과 장단점, 사례를 조명하고, 미래에는 VR 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이 축구 전술에 미칠 영향도 논한다. 모든 서술은 축구 전술 관련 전문 서적 및 학술 자료에 기반하며, 각 주장마다 참고 문헌을 통해 근거를 제시한다.

1. 근대 축구의 태동과 초기 전술 (19세기)

19세기 중엽 잉글랜드에서 현대 축구의 기원이 되는 규칙들이 형성되었다. 1863년 잉글랜드 축구 협회(FA)의 첫 공식 규칙에서는 오프사이드 규칙이 매우 엄격하여 공보다 앞선 위치의 공격수에게 패스가 불가능했다 (The Question: Why is the modern offside law a work of genius?). 그러나 1866년 규정 개정으로 3명의 수비수가 앞에 있으면 공격수가 온사이드가 되는 룰이 도입되어 전진 패스 플레이가 비로소 허용되었다 (The evolution of football (soccer) rules). 이 변화로 패스 플레이의 가치가 부각되며 팀 전술의 개념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까지 대부분 팀들은 1–1–8 또는 1–2–7과 같이 공격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포메이션을 사용했고, 선수들은 개인 드리블 능력에 의존하여 전진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이러한 공격 일변도의 초창기 축구에서, 잉글랜드 팀들은 개인기의 “돌파”를 중시한 반면 스코틀랜드 팀들은 패스 게임을 도입하여 조직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보다 균형 잡힌 포메이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870년대 후반부터 수비와 공격의 안배를 꾀한 **2–3–5 포메이션(피라미드)**이 등장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잉글랜드 프레스턴 노스 엔드 팀 등이 채택한 2–3–5 시스템은 후방에 2명의 풀백(Fullback), 중원에 3명의 하프백(Halfback), 전방에 5명의 공격수를 배치하여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공수 균형을 이루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이는 수적 우세에만 의존하던 이전 전술에 비해 조직적인 수비 구조를 갖춘 첫 사례로 평가된다. 2–3–5 포메이션에서는 중앙 하프백이 상대 센터포워드를 마크하며 수비와 공격 연결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또한 풀백 두 명이 최후방을 지키고 하프백 삼인이 1차 저지선을 형성함으로써, 공격 시에는 5명의 공격진이 폭넓게 펼쳐지고 수비 시에는 5명의 수비진형이 갖춰지는 유기적인 전환이 가능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이 피라미드 포메이션은 1890년대에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전파되어 1930년대까지 국제 축구의 표준 전술로 자리잡았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실제로 우루과이 대표팀은 2–3–5 포메이션을 앞세워 1924, 1928 올림픽과 초대 월드컵인 1930년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해당 전술의 효용을 입증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초기 축구의 표준 포메이션인 **2–3–5 (피라미드)**에서는 공격수 5명을 전진 배치하고 3명의 하프백이 중원을 지키며 2명의 풀백이 수비를 담당했다​

britannica.com. 이 포메이션은 개인기량 위주의 초창기 축구에 조직적인 공간 안배 개념을 도입하여, 수비 숫자를 늘리는 대신 공격 전개 시 하프백들의 지원으로 5명의 공격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19세기 후반 이래 널리 사용된 2–3–5는 공격과 수비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했고, *“필요 시 공격수가 수비로 전환하고 하프백들이 공격 전개에 가담”*하는 등 포지션 간 협력이 이루어졌다​

en.wikipedia.org. 이러한 기본 전술 개념의 확립은 이후 축구 전술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2. WM 포메이션과 오프사이드 규칙 개정 (1920~30년대)

1925년 축구 규칙의 큰 변화로 오프사이드 조건이 완화되면서 전술적 전환기가 찾아왔다. 이 해에 오프사이드 규칙이 기존 수비 3명 → 2명의 수비수만 있으면 공격수가 온사이드가 되도록 변경되었는데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이는 공격수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여 경기당 득점이 급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리그에서는 1924-25시즌에 4,700여 골이 나왔으나 규칙 개정 직후인 1925-26시즌에는 6,373골로 득점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응하여, 상대 공격수를 효과적으로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지 못하게 된 팀들은 수비 조직을 재편성할 필요에 직면했다.

허버트 채프먼(Herbert Chapman) 감독은 이러한 변화에 맞서 잉글랜드 아스널에서 혁신적인 **WM 포메이션(3–2–2–3)**을 고안하였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알파벳 W와 M을 포메이션 상에 겹쳐놓은 형태라 해서 붙은 이름의 WM 전술은, 2–3–5 피라미드에서 센터 하프백을 최후방 수비수로 내려 3백 라인을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즉, 풀백 두 명 외에 추가로 중앙 수비수를 두어 3명의 센터백(당시 용어로는 풀백 2명 + 스토퍼 역할의 하프백)을 두고, 중원에는 2명의 하프(윙 하프)만 남기는 대신 나머지 2명의 하프를 공격형 인사이드 포워드로 전환하여 전방 3명과 연계하도록 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이로써 5-5로 나뉘는 인원 배치(수비 5명, 공격 5명)가 이루어져 *“수비시에는 철저한 숫자 확보, 공격시에는 효과적인 역습 전개”*가 가능해졌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실제로 WM 포메이션은 하프라인 근처에 ‘공간’(Inside forward와 Wing half 사이에 생긴 간격)을 만들어두었다가, 볼을 탈취하면 그 공간을 통해 빠르게 전방 3톱으로 연결하는 아스널 특유의 역습 패턴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채프먼의 아스널은 1930년대 초 잉글리시 리그를 제패하며 WM 전술의 위력을 과시했고, 곧 잉글랜드 전역의 팀들이 이를 채택하게 되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WM 포메이션의 성공 비결은 공격과 수비의 균형에 있었다. 수비 시 3명의 수비수가 중앙을 두텁게 형성하여 오프사이드 규칙 완화로 늘어난 스루패스와 침투를 차단할 수 있었고, 공격 시에는 2선의 인사이드 포워드들이 전방에 가담하여 여전히 5인 공격을 전개할 수 있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이렇듯 WM은 2–3–5 대비 수비 안정성을 대폭 높이면서도 공격력 손실을 최소화한 전술로 평가받는다. 다만 새로운 역할이었던 *센터백(스토퍼)*과 *인사이드 포워드(플레이메이커)*의 역량이 성패를 좌우했는데, 채프먼의 팀에서는 당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하나였던 알렉스 제임스(Alex James)가 인사이드 포워드로 활약하여 WM 전술의 핵심축이 되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한편, WM 전술은 영국을 넘어 유럽 대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에서는 비토리오 포초(Vittorio Pozzo) 감독이 WM과 유사한 **메토도(Metodo) 전술(2–3–2–3)**을 운용하여 1934년과 1938년 연속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포초의 메토도는 수비 숫자를 늘리는 대신 공격수를 한 명 중원으로 내려 플레이메이커로 활용한 전술로, 후방에 스위퍼 없이 맨투맨 마킹을 강조한 점만 제외하면 WM과 거의 유사했다. 이처럼 1930년대 중반까지 WM 계열 전술이 세계 축구를席권했으나, 일부 국가(예: 이탈리아, 남미의 몇몇 팀)는 여전히 2–3–5 피라미드를 고수하거나 약간 수정한 형태를 사용하기도 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5년 오프사이드 법 개정 이후 전술의 대세는 “수비수 숫자를 늘려 실점을 줄이고, 상대 실수를 틈타 역습”하는 방향으로 굳어져갔다. 이는 축구 전술이 최초로 공격 일변도에서 조직적 수비 개념을 도입한 변곡점이었다.

WM 포메이션(3–2–2–3)의 구성. 채프먼은 1925년 오프사이드 규칙 변화에 대응하여, 2–3–5 포메이션의 센터하프를 수비 라인으로 내린 3백 수비를 도입하고, 대신 한 명의 공격수를 중원으로 후퇴시켜 2명의 인사이드 포워드를 운용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이 포메이션에서는 3명의 수비수가 골문을 단단히 지키고, 2명의 하프백은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며, 2명의 인사이드 포워드는 공격형 미드필더 겸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 전방의 센터포워드와 양 윙어를 지원하였다. 그 결과 수비 숫자가 늘어나면서도 공격시에는 여전히 5명을 전진 배치하여 득점을 노릴 수 있었고, 특히 중앙 공간에서 창의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져 전술의 유연성이 증가하였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WM은 1930년대 축구 전술의 표준이 되었으며, 이후 전술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3. 헝가리의 WW 혁신과 4–2–4 공격 전술의 등장 (1940~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전술의 다양화가 가속화되며 WM 체계에도 새로운 변형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1940년대 후반 헝가리 축구의 혁신으로 탄생한 **WW 포메이션(3–2–3–2)**이다. 헝가리 MTK 부다페스트의 마르톤 부코비(Márton Bukovi) 감독은 WM의 공격 형태를 변형하여, 최전방의 센터포워드를 한 명 중원으로 내려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는 실험을 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그는 팀 내에 적합한 정통 센터포워드가 부족하자 한 명을 내려와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겼고, 대신 중원의 다른 한 명의 하프를 수비 임무에 집중시켜 밸런스를 맞추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이렇게 하여 탄생한 3–2–3–2 체제는 수비시에는 3–2–2–3(WM)처럼 보존되지만, 공격시에는 1명의 공격수가 중원으로 내려와 4명의 미드필더진을 형성함으로써 마치 W자를 거꾸로 뒤집은 형태(WW)의 진용이 됐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WW 전술은 WM과 4–2–4 포메이션의 과도기적 성격을 띠며, 전술 진화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평가된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부코비의 아이디어는 헝가리 국가대표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50년대 초 **구스타브 세베시(Gusztáv Sebes)**가 이끈 헝가리 대표팀(일명 “매직 마자르”)은 부코비의 구상을 받아들여, 전설적인 **나다르 히데그쿠티(Nándor Hidegkuti)**를 **딥라잉(center-forward)**으로 기용하는 변칙 전술을 선보였다 (False nine: ancient tactical curveball still retains the power to shock | Football tactics | The Guardian) (False nine: ancient tactical curveball still retains the power to shock | Football tactics | The Guardian). 히데그쿠티는 nominal한 센터포워드 위치에서 수시로 내려와 미드필드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펼쳤고, 그의 움직임에 혼란을 느낀 상대 수비수들이 그를 따라 올라오면 뒤 공간이 생겨 동료 공격수들이 침투하는 식의 전술이었다. 1953년 런던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6-3으로 격파한 충격적인 경기는 이 “거짓 9번(False Nine)” 역할의 위력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False nine: ancient tactical curveball still retains the power to shock | Football tactics | The Guardian). 잉글랜드 수비수 해리 존스턴이 *“어디로 마크해야 할지 몰라 완전히 무기력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히데그쿠티의 내려서는 움직임은 전통적인 수비 개념을 뒤흔든 혁신이었다 (False nine: ancient tactical curveball still retains the power to shock | Football tactics | The Guardian). 헝가리는 이러한 전술로 1950년대 초 무패행진과 1954년 월드컵 준우승을 달성하며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다. 비록 이 시스템이 보편화되진 못했지만(당시만 해도 “가짜 9번” 운용은 특이한 전술적 기교로 취급됐다 (False nine: ancient tactical curveball still retains the power to shock | Football tactics | The Guardian)), 훗날 현대 축구에서 “거짓 9번” 개념으로 부활하여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 리오넬 메시의 사례는 뒤에서 후술).

헝가리의 전술 혁신과 거의 동시에, 남미에서는 4–2–4 포메이션의 등장이 이루어졌다. 1940년대 말 브라질에서는 플라비오 코스타(Flávio Costa) 감독이 “Sistema Dínamo(대각선 시스템)”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포메이션 구상을 발표했는데, 이는 수비와 공격 양면을 강화하기 위해 수비수를 4명으로 증원하고 중원을 2명으로 두는 구상이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코스타와 더불어 헝가리의 **벨라 구트만(Béla Guttmann)**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이 두 사람은 독립적으로 4–2–4와 유사한 전술을 모색하고 있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4–2–4 포메이션의 기본 개념은 **강력한 공격(4명의 공격자원)과 탄탄한 수비(4명의 수비라인)**를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이를 위해 중원에 2명의 미드필더만 두되, 이들이 공수 양면에 기여하는 높은 활동량을 보여야 했다. 다시 말해 4–2–4는 선수들의 기술 향상과 체력 증대를 전제로 한 전술로, 두 미드필더가 수비시에 수비수들과 함께 6명의 수비 블록을 형성하고, 공격시에는 공격수들과 합류해 6명의 공격을 전개하는 유동적인 시스템이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이러한 유연성 덕분에 경기 상황에 따라 포메이션을 변화시킬 수 있었지만, 동시에 미드필더 2명이 넓은 지역을 커버해야 하므로 전술 이해도와 체력이 매우 요구되는 전술이기도 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4–2–4 포메이션은 1950년대 후반 브라질 대표팀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평가된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브라질은 1958년 월드컵에서 이 4–2–4 시스템을 본격 가동하여 세계 축구의 판도를 바꾸었다. 펠레, 가린샤, 바바 등 월등한 기량의 공격수 4인을 전방에 배치하고, 질베르토 실바즐토(traditional halfback) 같은 당대 미드필더 2명이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와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브라질은 1958년과 1962년 월드컵을 연달아 제패하며 4–2–4 전술의 위력을 증명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특히 1958년 결승에서 스웨덴을 5-2로 물리친 경기는 4–2–4의 공격력이 극대화된 사례로 꼽힌다. 이 포메이션의 장점은 4명의 공격수가 폭넓게 펼쳐져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고, 2명의 중원 미드필더가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여 속도감 있는 공격 전개와 견고한 수비 복귀를 동시에 실현했다는 데 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다만 미드필더 수적 열세로 인해 자칫 중원 장악력을 잃을 위험도 있었는데, 브라질은 뛰어난 개인 능력으로 이를 상쇄하였다. 4–2–4는 또 하나의 이정표로서 이후 많은 팀들이 1960년대 초반까지 도입하였고, 여기서 파생된 전술로 4–3–3 등이 생겨나게 된다 (브라질은 1962년 월드컵에서 한 명의 윙어를 중원으로 내려 4–3–3으로 변형하여 다시 우승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브라질에 의해 완성된 4–2–4 포메이션에서는 수비수 4명과 미드필더 2명이 방패를 형성하고, 나머지 4명이 공격을 펼쳤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이 시스템은 WM의 경직성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으로서, 강력한 공격력과 수비 안정을 동시에 노렸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두 명의 미드필더가 수비시에 하프라인까지 내려와 4백과 함께 수비에 가담하고, 공격 전개 시에는 풀백의 오버래핑과 함께 공격에 합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격 시 6명, 수비 시 6명”*의 효과를 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그러나 미드필더 숫자가 적기 때문에 이들의 커버 범위가 넓었고, 전술 이해도와 체력 소모가 매우 큰 편이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브라질 팀은 이를 해결할 만큼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했고, 4–2–4 전술로 1958년과 1970년 월드컵을 제패하며 전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사진에서 노란색이 미드필더 2명, 파란색이 4명의 수비수, 빨간색이 4명의 공격수를 나타낸다.

4. 철벽 수비 전술: 카테나치오의 시대 (1960년대)

1950년대 후반부터는 전술의 무게 중심이 다시 수비 조직화로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축구에서, “먼저 실점을 막고 기회를 엿보는” 철학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선 전술이 바로 **카테나치오(Catenaccio)**이다. 카테나치오는 이탈리아어로 “문빗장”을 뜻하는데, 말 그대로 빗장을 지르듯 골문을 잠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The Evolution of Soccer Tactics: From Classic Formations to Modern Strategies – Breaking The Lines). 그 기원은 1930~40년대 스위스의 카를 라판(Karl Rappan) 감독이 고안한 베로(Verrou)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라판의 베로 전술은 당시 표준이던 WM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최후방에 자유로운 스위퍼(스위퍼 = 자유 수비수)**를 한 명 추가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그는 4명의 수비수를 두되 그 중 한 명은 상대 공격수를 지역이나 대인으로 담당하지 않고 뒤에서 잔실수와 공간을 커버하는 역할을 맡겼다. 이를 통해 수비 조직의 두께를 한층 더하고 상대의 예봉을 꺾은 후, 공을 탈취하면 측면을 활용한 재빠른 역습으로 공격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러한 베로 시스템은 제한적이나마 스위스 등에서 성과를 거두었고, 이탈리아로 전파되어 발전을 거듭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1960년대에 들어 엘레니오 에레라(Helenio Herrera)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 인테르 밀란 팀이 라판의 개념을 계승, 발전시켜 완성한 것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카테나치오이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에레라는 5–3–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후방에 **리베로(Libero)**라 불리는 스위퍼를 두어 최종 수비벽을 형성했다. 즉, 수비라인은 4백이 아닌 **3명의 센터백 + 1 리베로(스위퍼)**로 구성되었다. 센터백들은 상대 공격수를 일대일로 철저히 마크하고, 그 뒤에 위치한 리베로는 커버 플레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며 혹시 뚫렸을 때 대비했다 (The Evolution of Soccer Tactics: From Classic Formations to Modern Strategies – Breaking The Lines). 측면은 윙백 없이 미드필더 중 2명이 사이드 하프 겸 윙 역할을 수행하고, 오직 풀백(혹은 스토퍼)이 측면 수비에 치중하는 형태였다. 중원에는 2~3명의 미드필더가 배치되어 수비에 가담함과 동시에 기회 시 공격 전개를 도왔다.

카테나치오 전술의 핵심은 강력한 맨투맨 수비와 조직적인 지역 봉쇄였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수비 시에는 거의 5명의 수비수(3백 + 스위퍼 + 수비형 미드필더)가 박스 근처를 촘촘히 메우고, 상대에게 공간과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상대 공격을 차단한 후에는 미드필더나 풀백이 길게 전방으로 패스하거나 드리블 돌파하여 빠른 역습을 시도했다. 이때 최전방 공격수 한두 명(인테르의 경우 마초라티, 콜라 등의 공격수)이 고립되어 있다가도 순간적으로 침투하며 득점을 노렸다. 이러한 전술로 인테르 밀란은 1960년대 중반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을 연이어 제패했고, 이탈리아 팀들의 국제적 성공을 이끌었다.

카테나치오의 장점은 단연 안정적인 수비다. 다수의 수비 인원이 자기 진영을 지키니 실점 확률이 현격히 낮아졌고, 실제로 카테나치오를 구현한 팀들은 1-0이나 2-0 승리를 다수 만들어냈다 (The Evolution of Soccer Tactics: From Classic Formations to Modern Strategies – Breaking The Lines). “1점 넣고 철벽 수비”라는 말이 이 전술의 정신을 잘 대변한다. 특히 리베로를 둔 덕에 수비수 한 명 한 명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줄었고, 상대가 아무리 창의적인 공격을 해도 마지막에 항상 한 명의 여유 수비수가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팀 전체에 주어졌다 (The Evolution of Soccer Tactics: From Classic Formations to Modern Strategies – Breaking The Lines). 그러나 단점 역시 뚜렷했다. 지나치게 수비적으로 경기하다 보니 공격 볼 점유시간이 짧고 경기 내용이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또한 공격에 나서는 숫자가 적어 역습이 무위에 그치는 경우 공격 기회가 쉽게 무산되곤 했다. 결과적으로 카테나치오는 실리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지루하게 만든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축구계에 보다 공격적이고 역동적인 스타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카테나치오의 전형적 포진은 **5–3–2 (스위퍼 시스템)**으로 요약된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후방에 3명의 센터백(Centre Back)과 그 뒤의 **리베로(스위퍼)**를 두어 이들이 빗장 수비를 형성하고, 양 측면의 윙백들은 수비 시 풀백처럼 처져서 5백 라인을 이룬다. 중원에는 3명의 미드필더(Centre Midfield)가 배치되어 공간을 압축하며 상대를 봉쇄하고, 전방에는 2명의 포워드만 남겨 역습에 대비한다. 그림에서 파란색 Sweeper(스위퍼)가 수비 라인 뒤에서 커버 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술은 *“한 명이 뚫려도 뒤에 또 한 명이 있다”*는 다중 수비를 가능케 하여 실점을 최소화하지만, 동시에 공격 전개에서는 수적 열세로 인해 단조롭고 수비적인 경기 양상을 초래했다 (The Evolution of Soccer Tactics: From Classic Formations to Modern Strategies – Breaking The Lines)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카테나치오는 1960년대 인테르 밀란을 비롯한 이탈리아 팀들의 성공을 가져왔으나, 반작용으로 보다 창조적인 공격축구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5. 토털 풋볼: 전술의 혁명 (1970년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 축구 전술은 다시 한 번 급진적인 변혁을 맞이한다. 이번에는 수비 일변도의 카테나치오에 대한 반발로, 공격과 수비의 경계를 허무는 전술 철학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Total Football)”**이다. 토털 풋볼은 리누스 미헬스(Rinus Michels) 감독과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를 필두로 한 아약스 암스테르담과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 의해 구현된 전술로서, 핵심은 *“모든 선수가 수비도 하고 공격도 한다”*는 데 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즉,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역할을 바꾸며, 공간을 창출하고 메우는 전면적 축구를 지향했다.

토털 풋볼의 실행 형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나, 기본 포메이션은 4–3–3 또는 3–4–3에 가까웠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수비 시에는 측면 수비수(풀백) 중 한 명이 미드필드로 전진해 3백을 이루고, 공격 시에는 측면 공격수(윙어)들이 중앙으로 파고들거나 미드필더가 전방으로 뛰쳐나가며 형식적인 배열이 계속 변화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선수들의 포지션 스왑이다. 예컨대 공격수가 측면으로 벌려나가면 윙어가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고, 미드필더가 오버래핑해 전방으로 침투하면 다른 선수가 그 자리를 커버하는 식으로, 어느 포지션이 비면 다른 선수가 즉시 메워주는 플레이를 펼쳤다. 이를 위해 선수들은 여러 포지션의 역할을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여야 했으며, 기술, 전술 지능, 체력이 모두 뛰어나야 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네덜란드 대표팀은 이를 갖추고도 남을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특히 *“총감독 없이 그라운드의 지휘자”*라 불린 요한 크루이프는 때로는 최전방 스트라이커, 때로는 미드필더, 때로는 수비수 위치까지 내려와 플레이를 조율하며 토털 풋볼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토털 풋볼의 전술적 특징은 가공할 만큼 유동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점이다. 상대 입장에서는 누가 어디에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워 수비 대처가 곤혹스러웠다. 또한 선수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연계하기 때문에 상대팀은 공간과 수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네덜란드 아약스 팀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이 전술로 유럽 컵 3연패(1971, 1972, 1973)를 달성하며 클럽 축구를 지배했고, 네덜란드 국가대표는 1974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197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개최국 서독을 맞아 경기 시작 1분 만에 15차례 연속 패스로 페널티킥을 얻어내 골을 넣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서독 선수들은 단 한 번도 볼을 건드리지 못했다. 이처럼 볼 점유전원 공격으로 대표되는 토털 풋볼은 축구를 마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물론 토털 풋볼도 한계와 전제 조건이 있었다. 이를 구현하려면 선수들의 기량이 매우 높아야 하며, 팀 조직력이 극도로 성숙해야 한다. 선수 개개인의 전술 이해도협동심, 그리고 무엇보다 체력적 뒷받침이 없으면 자칫 포지션 파괴가 혼란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실제로 197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는 경기 초반엔 서독을 농락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 저하와 집중력 저하로 수비 조직이 무너지며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이는 토털 풋볼도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하지만 토털 풋볼이 남긴 유산은 엄청났다. 이후 많은 팀과 지도자들이 이 철학을 부분적으로 계승하였고, 축구 전술이 보다 유기적이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특히 1980년대 이후 FC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발전한 포지셔널 플레이와 2000년대 후반 티키-타카 전술은 토털 풋볼의 현대적 계승으로 평가된다.

6. 현대 포메이션의 정립: 4–4–2와 압박 축구 (1980~90년대)

1970년대 토털 풋볼의 여파로 일시적으로 공격축구 열풍이 불었으나, 1980년대로 접어들며 전술은 다시 한층 안정화 단계를 맞이한다. 이 시기 가장 보편화된 전술 포메이션은 4–4–2였다. 4–4–2는 숫자 그대로 4명의 수비수 – 4명의 미드필더 – 2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는 것으로, 1966년 잉글랜드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 등 이미 60년대 중후반에 등장하였지만 80년대에 이르러 거의 모든 나라, 모든 팀들이 기본 전술로 채택할 만큼 표준화되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4–4–2의 강점은 무엇보다 균형 잡힌 형태라는 점이다. 후방의 4백은 풀백 2명과 센터백 2명으로 구성되어 수비지역을 폭과 깊이 모두 커버할 수 있었고, 미드필드의 4인은 중앙 2명과 측면 2명이 배치되어 공수 양면에서 고른 역할 분담이 가능했다. 전방에도 투톱을 두어 공격력을 보전했다. 이렇게 **두 줄의 4인 수비벽(일명 two banks of four)**을 세움으로써 공간을 촘촘히 메우고 조직적인 수비를 펼치면서, 동시에 두 명의 공격수를 통해 언제든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전술적 안정감이 4–4–2의 인기 요인이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영국을 비롯한 유럽 축구에서는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미 클럽팀들이 4–4–2를 널리 활용했다. 예컨대 리버풀, 노팅엄 포레스트 등 잉글랜드 클럽들은 1977~1982년 사이 유러피언컵을席권하며 4–4–2 기반의 효율적 축구를 선보였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1980년대에도 이탈리아 세리에A, 잉글랜드 1부리그 등에서 4–4–2는 사실상의 표준 전술이었다. 그러나 4–4–2 역시 시대와 함께 발전을 거듭했는데, 그 중 중요한 흐름이 **압박 축구(pressing)**의 도입이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 AC 밀란의 아리고 사키(Arrigo Sacchi) 감독은 4–4–2를 바탕으로 하되 전혀 새로운 수비 개념을 적용했다. 그는 수비수들에게 특정 선수를 따라다니는 대신 지역(zone)을 책임지는 수비를 주문했고, 공을 잃었을 때는 전원이 즉각적으로 공 근처로 압박하여 상대의 공격 전개를 방해하도록 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즉, 공이 있는 위치에서 “상대가 숨쉴 틈을 주지 않고 달려드는” 압박 수비 전술을 체계화한 것이다. 사키의 밀란은 최전방 공격수까지도 수비시에 적극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라인을 높게 끌어올려 상대를 오프사이드 함정에 빠뜨리는 등, 이전의 수비적 4–4–2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능동적 수비를 구현했다. 이러한 압박 전술은 미헬스의 토털 풋볼 시절에도 부분적으로 쓰였지만, 사키는 이를 철저하고 조직적으로 연마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그 결과 AC 밀란은 1989, 1990년 유러피언컵 2연패를 기록했고, 수비 축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후 **프레스(press)**라고 불린 이 압박 수비는 현대 축구의 필수 전술로 자리잡았다.

4–4–2 전술 하에서 압박 축구를 구사하는 팀들은 수비를 하면서도 주도권을 쥐었는데, 이는 전통적 카테나치오와는 대비되는 접근법이었다. 상대가 볼을 잡으면 자리로 물러서서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가가 공간과 시간을 압박함으로써 능동적으로 공을 탈취하려 한 것이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이러한 철학은 1990년대 이후 “수비=소극적”이라는 공식을 깨고, 수비도 공격처럼 적극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사키는 수비 라인을 적극적으로 올리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사용하여 상대를 밀어냈는데, 이는 후방에 스위퍼를 두고 물러서는 카테나치오와 정반대의 접근이었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이처럼 4–4–2는 시대 요구에 맞춰 지역 방어, 압박 전술, 오프사이드 트랩 등 현대적인 개념을 흡수하며 진화했다.

한편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4–4–2 외에 3백 기반 포메이션도 다시 부상했다. 특히 3–5–2 포메이션이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내었는데, 아르헨티나가 카를로스 빌라르도(Carlos Bilardo) 감독 지휘 아래 3–5–2를 활용해 1986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고, 1990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 오른 아르헨티나와 우승팀 서독 모두 3–5–2를 가동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3–5–2는 5–3–2와 형태상 비슷하지만, 스위퍼 없이 스리백을 두고 양 측면의 윙백이 공격적으로 전진하는 포메이션이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수비 시에는 윙백이 내려와 5백이 되고, 공격 시에는 측면을 폭넓게 커버하며 미드필드 숫자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도 1990년대 초반까지 일부 팀들이 3–5–2를 애용하여, 한때 세계 축구에 3백 전술이 확산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서독(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 감독은 1986, 1990 월드컵에서 스위퍼를 가동한 5–3–2의 변형과 3–5–2를 상황에 따라 혼용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요약하면, 1980~90년대의 전술사는 4–4–2의 전성기라 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 축구는 압박, 지역방어 등 현대적인 개념들을 받아들여 한층 정교해졌다. 또한 동시에 3백 전술의 부활 조짐이 나타나 전술적 다양성이 증대되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전술 세분화의 토대가 되었다.

7. 전술의 세분화: 4–2–3–1과 거짓 포지션, 3백의 재조명 (2000년대~2010년대)

21세기에 들어서 축구 전술은 더욱 세밀하게 분화되고 상황별로 유동적으로 운용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4–4–2의 변형 형태로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행한 포메이션은 4–2–3–1이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4–2–3–1은 수비 4명, 수미 2명(더블 볼란치), 공격 2선에 3명(측면 2명 +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최전방에 1명을 배치하는 형태로, 4–4–2의 한 명을 중원으로 이동시켜 공격형 미드필더(혹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를 둔 전술이다. 이 포메이션의 장점은 미드필드 장악력유연성이다. 수비시에는 4–4–1–1 혹은 4–5–1처럼 두 줄 수비를 취하며 안정적으로 막을 수 있고, 공격시에는 2선의 3명이 폭넓게 퍼지거나 중앙으로 모여들며 다양한 공격 패턴을 만든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특히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일명 더블 피벗)는 수비시에 수비라인 앞을 보호하고 공격 전개시에 후방에서 볼을 배급함으로써, 팀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이로써 4–2–3–1은 수비 안정과 공격 창의성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아, 2006년 독일 월드컵 전후로 전세계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예컨대 2006년 월드컵에서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상위권 팀들이 4–2–3–1을 활용했으며, 2010년 스페인 대표팀도 비야를 최전방 원톱으로, 그 뒤를 3명의 미드필더(이니에스타-페드로-차비)와 2명의 홀딩 미드필더(알론소-부스케츠)로 구성한 4–2–3–1 유사 형태로 우승을 차지했다. 클럽 레벨에서도 무리뉴 감독의 첼시(2004~07), 펩 과르디올라 이전 시기의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2010년대 초 무리뉴 부임 시절) 등이 4–2–3–1을 주포메이션으로 활용하였다.

4–2–3–1 전술에서 핵심적인 역할은 2선의 플레이메이커이다. 등번호 10번에 해당하는 이 공격형 미드필더는 팀의 창조적인 공격을 도맡으며 자유롭게 움직인다. 예컨대 독일 국가대표팀의 메수트 외질이나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이 이 역할을 맡아 경기 흐름을 바꾸곤 했다. 또한 측면의 2선 자원들은 전통적인 윙어로 뛸 수도 있고, 인버티드 윙어(inverted winger)처럼 안으로 파고들어와 슛팅이나 패스를 시도할 수도 있어 전술적 선택지가 넓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4–2–3–1은 포메이션 숫자로는 하나로 표기되지만, 감독과 선수 운용에 따라 여러 가지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연성이 크다. 다만 원톱 스트라이커가 고립되지 않도록 2선 지원이 원활해야 하고, 미드필더 2명이 넓은 수비 범위를 커버해야 하는 만큼 이들의 수비력이 중요하다. 전반적으로 4–2–3–1은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축구의 메가트렌드 전술로 자리매김했다.

현대 축구에서는 포메이션의 유행과 함께 “거짓 포지션” 개념의 활용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앞서 언급한 헝가리의 거짓 9번 개념이 21세기 들어 재조명되면서, 여러 감독들이 공격 전술에 변화를 주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펩 과르디올라(Pep Guardiola) 감독이 2009년 경 FC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를 전형적인 스트라이커가 아닌 **‘False Nine(가짜 9번)’**으로 기용한 것이다. 메시는 원래 윙어나 처진 스트라이커로 뛰다가, 과르디올라에 의해 최전방 중앙에 배치되었지만 정작 경기가 시작되면 중원으로 자주 내려왔다. 이 움직임은 상대 센터백들을 딜레마에 빠뜨렸는데, 따라나서면 뒷공간이 비고, 안 따라가자니 메시가 미드필드에서 자유롭게 볼을 받아 플레이를 만들 수 있었다. 그 결과 메시가 내려오며 생긴 빈 공간을 다른 선수(주로 측면 공격수들이 중앙침투)에 이용하게 하는 전술이 완성되었다. 바르셀로나는 이 전술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클럽 축구를席권했고, 스페인 대표팀도 공격수 없이 미드필더들로만 구성된 “제로톱” 전술로 유로 2012를 우승하는 등 거짓 9번 개념의 위력을 보였다. 이렇듯 현대에 와서 거짓 포지션의 활용 – 즉 nominal한 포지션과 실제 움직임을 다르게 하여 상대를 교란시키는 것 – 은 중요한 전술 트렌드 중 하나가 되었다.

거짓 포지션은 공격수에 국한되지 않는다. **거짓 풀백(false full-back)**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풀백이 단순 측면 수비수가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처럼 안으로 파고들어 플레이메이킹을 하거나, 공격수처럼 오버래핑하여 윙어 역할을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체스터 시티 등에서 풀백들을 중원으로 움직여 인버티드 풀백 전술을 구사했고, 이는 빌드업 시 미드필드 숫자를 늘려 점유율을 높이는 효과를 내었다. 또한 가짜 10번(False 10)이라 하여 nominal로는 측면 공격수이지만 사실은 플레이메이커로 중앙으로 모여드는 움직임(예: 토마스 뮐러의 “공간 해석자” 역할) 등도 현대 축구에서 나타나는 전술적 실험들이다. 요컨대, 현대 축구 전술은 포지션의 고정관념을 깨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거짓 포지션 개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한편, 2010년대에는 3백 전술의 부활이 화제가 되었다. 4백 체계가 주류인 가운데 몇몇 지도자들은 3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성과를 거두었고, 이를 계기로 많은 팀들이 3백 전환을 시험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토니오 콘테(Antonio Conte)**로, 그는 유벤투스(2011~2014)에서 3–5–2 포메이션으로 세리에A를席권한 데 이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감독으로 부임한 2016-17 시즌 도중 3–4–3 포메이션으로 전환하여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첼시는 시즌 초 4백으로 부진했으나 콘테가 3백(3–4–3)으로 바꾸고부터 연승 행진을 이어갔고, 다른 프리미어리그 팀들도 이에 대응해 3백을 따라 쓰는 현상이 벌어졌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콘테 이전에도 루이스 판할(Louis van Gaal) 감독이 2014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팀을 3–5–2로 운영해 3위를 차지하는 등 3백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3백 전술의 현대적 부활은 윙백 역할의 중요성과 연결되어 있다. 윙백들은 3–5–2나 3–4–3 체계에서 측면 전체를 커버해야 하므로 높은 체력과 왕성한 공수 기여도가 요구된다. 1990년대 브라질 대표팀의 카푸(Cafu)와 로베르토 카를로스(R. Carlos)는 윙백 전성시대를 연 선수들로, 2002년 월드컵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현대 3백 전술에서도 첼시의 마르코스 알론소, 리버풀의 트렌트 A.아놀드(인버티드하게 활용되기도 함) 등 윙백/풀백 자원의 활용이 성패를 좌우한다. 3백의 장점은 중앙 수비 숫자가 3명이라 수비 안정이 높고 빌드업 시 후방에서 수적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단점은 자칫 측면이 비기 쉽고 공격수가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콘테 등은 전술적 디테일로 이러한 약점을 상쇄시켰다. 예컨대 콘테의 3–4–3에서는 윙백이 올라간 자리에 볼란치가 측면 커버를 들어가고, 공격 상황에서는 측면 공격수들이 하프스페이스로 침투하여 윙백과 연계하는 등 정교한 움직임으로 운영되었다고 평가된다.

결과적으로 2010년대의 전술은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험의 장과 같았다. 4–2–3–1 대 4–3–3, 4백 대 3백, 지공 대 속공, 포지션 고정 대 스위칭 등 상황과 선수에 따라 다양한 전술이 공존했다. 특히 빅클럽들은 한 가지 포메이션에만 의존하지 않고, 경기 중에도 포메이션을 변형하는 유연함을 보였다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예를 들어 맨체스터 시티는 경기 시작 시 4–3–3으로 나오지만 빌드업 시 2–3–5 형태(풀백이 중앙으로 들어가고 윙어와 미드필더가 올라감)로 변형했다가, 수비 전환 시 4–4–2처럼 두 줄 수비를 하는 식이다. 이러한 상황별 전술 변화는 현대 축구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전술 혁신이 더욱 정교한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8. 티키-타카와 게겐프레싱: 현대 전술 철학의 양대축 (2008~2010년대)

2008년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는 두 가지 전술 철학이 세계 축구를 양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는 스페인과 FC 바르셀로나가 주창한 **“티키-타카(Tiki-Taka)”**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한 **“게겐프레싱(Gegenpressing)”**이다. 이 둘은 서로 대조적인 스타일이지만, 모두 현대 축구 전술의 정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티키-타카는 한마디로 점유를 통한 지배 전술이다. 짧은 패스와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볼을 소유하고 경기를 컨트롤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상대를 끌어내 공간을 창출한 후 치명적인 패스로 결정적 기회를 만드는 스타일이다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스페인 국가대표팀(유로 2008, 월드컵 2010, 유로 2012 연속 우승)과 펩 과르디올라 감독 시기의 바르셀로나(2008~2012)이 이 전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티키-타카의 기본 전술 틀은 4–3–3 혹은 4–1–4–1이었지만, 포메이션보다는 플레이 철학이 핵심이었다. 선수들은 가능한 한 공을 오래 소유하고, *“목적 없는 패스는 무의미하다”*는 과르디올라의 지론대로 매 패스에 의도를 담았다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상대가 공을 가지면 즉시 전원이 압박하여 최대한 빨리 되찾고(“6초 룰” 등으로 불린 즉각 압박), 다시 볼을 소유하면 폭넓은 피치 활용으로 상대를 흔들었다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티키-타카의 구현을 위해서는 모든 선수가 좁은 공간에서도 정확한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며, 뛰어난 포지셔닝 감각이 요구된다. 바르셀로나의 사비(Xavi),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같은 미드필더들은 압박을 이겨내며 원터치, 투터치로 패스를 연결했고, 리오넬 메시, 다비드 비야 등의 공격수들은 공간을 찾아 연계했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메시를 거짓 9번으로 활용하면서 티키-타카에 창의성을 더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확보하는 효과를 냈다. 티키-타카의 최종 목적은 상대를 지치고 혼란스럽게 만든 후 결정적인 공간이 열릴 때까지 인내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순간적으로 템포를 올려 침투 패스나 2대1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다시 말해, **“공을 뺏기지 않으면 절대 지지 않는다”**는 철학 아래, 지공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전술이었다.

티키-타카의 성과는 찬란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스페인 대표팀은 메이저대회를席권하며 “역대 최강국” 반열에 올랐고, 바르셀로나는 2009년 사상 최초의 6관왕을 포함해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이 스타일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2010년대 중반부터 몇몇 팀들이 대응 전술을 찾아냈다. 대표적으로, 2010년 인터 밀란(무리뉴 감독)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철저한 지역 수비와 역습으로 승리했고, 2012년 첼시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바르셀로나를 꺾었다. 티키-타카에 맞서는 방법은 **“선 수비-후 역습”**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한 압박으로 맞받아치는 전략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게겐프레싱과 연결된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게겐프레싱(Gegenpressing)**은 독일어로 “counter-pressing”(역압박)을 뜻한다. 쉽게 말해 *“공을 뺏겼을 때 곧바로 역으로 압박하여 되찾는다”*는 전술이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전통적으로 팀이 공을 잃으면 수비 진영으로 물러나 재정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게겐프레싱을 구사하는 팀은 오히려 그 순간 상대를 즉각적으로 압박하여 반격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이는 공을 빼앗긴 직후 상대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며 약간의 혼란이 있는 틈을 노린 것으로, 여러 선수들이 동시에 달려들어 주변 패스 길목을 차단하고 태클을 시도함으로써 상대 공격을 시작조차 못 하게 만든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이 전술의 장점은 상대 진영에서 볼을 되찾을 경우 곧바로 슈팅 찬스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게겐프레싱의 옹호자였던 위르겐 클롭(Jürgen Klopp) 감독은 *“게겐프레싱 자체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다. 우리가 볼을 뺏으면 단 한 번의 패스로 바로 득점 기회”*라고 강조했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클롭이 이끈 도르트문트와 리버풀은 강렬한 전방 압박으로 유명했고, 종종 상대 진영에서 공을 탈취해 몇 초 만에 골을 만들어냈다.

게겐프레싱은 한편으로 티키-타카 철학과 대비된다. 티키-타카 팀(예: 바르셀로나, 스페인)은 공을 잃었을 때 *“즉시 압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공을 되찾으면 템포를 늦추고 다시 점유를 유지하려 한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반면 게겐프레싱 팀(예: 클롭의 리버풀, 독일의 일부 팀들)은 공을 되찾으면 *“즉시 공격”*으로 전환하여 높은 템포를 이어간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요컨대 티키-타카는 **“공을 잃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게겐프레싱은 **“공을 잃어도 금방 되찾는 것”**을 중시한다. 두 철학 모두 공수 전환 순간의 압박을 강조하지만, 압박 이후의 전개 양상이 다르다. 현대의 많은 강팀들은 이 둘을 적절히 혼합하여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펩 과르디올라의 팀들은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면서도 공을 빼앗기면 곧장 조직적으로 압박해 뺏어오는 게겐프레싱 요소를 겸비하고 있다.

게겐프레싱의 단점은 피로 누적과 위험 부담이다. 선수들이 쉴 새 없이 압박하다 보면 체력 소모가 크고, 일정 간격이 촘촘한 리그에서는 부상 위험과 경기력 기복이 나타날 수 있다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또한 전원 압박하다가 한두 명이 압박에 실패하면 오히려 수비 뒷공간이 넓게 열려버리는 리스크도 있다. 따라서 게겐프레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선수단의 체력 관리와 탄탄한 수비 조직이 필수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후반 많은 팀들이 게겐프레싱을 부분적으로라도 활용하였다. 독일 출신 감독들(클롭, 투헬 등)뿐 아니라 토트넘의 포체티노, 이탈리아 나폴리의 사리 등도 전방압박 전술을 애용했다. 그만큼 현대 축구에서 압박의 강도는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결국 티키-타카와 게겐프레싱은 한 시대를 양분한 전술 아이콘으로, 전자는 공격의 예술, 후자는 수비(압박)의 예술로 묘사되며 축구 전술의 폭을 한층 넓혔다.

9. 미래 축구와 VR 기술의 도입 (2020년대 이후 전망)

축구 전술의 역사는 곧 변화와 적응의 역사이며, 미래에도 그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특히 첨단 기술의 발전은 축구 훈련과 전술 분석 방식에 큰 변화를 예고한다. 그 중 주목할 만한 분야가 VR(가상현실) 및 AR(증강현실) 기술의 접목이다. 최근 스포츠 과학 연구에서는 VR/AR이 축구훈련에 주는 효과를 탐구하고 있는데, 가상 시뮬레이션은 실제 필드를 재현함으로써 선수들의 전술 이해와 의사결정 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음이 보고되었다 () (). 예컨대 VR 환경에서 선수들은 날씨나 부상 위험과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전술 상황을 체험할 수 있고, AR 기술을 통해 훈련 중 실시간 전술 지시나 피드백을 선수 시야에 겹쳐 보여줄 수도 있다 () (). 이를 활용하면 전술 훈련의 인터랙티브화가 가능해져, 복잡한 전술 패턴이나 움직임을 가상으로 연습하고 즉각적인 교정을 받는 것이 현실화된다.

이미 일부 구단에서는 VR 트레이닝 시스템을 도입하여 선수들의 **시야 확보(scanning)**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High-Speed Practices: How Tech-Driven Training Devices Are …) (Future Performance Technology Ltd – Virtual Reality immersive …). 연구에 따르면 필드 훈련에 VR 세션을 보완한 선수들이 더 빠른 판단력과 더 나은 위치선정을 보였다는 결과도 있다 (High-Speed Practices: How Tech-Driven Training Devices Are …). 이는 미래의 축구 훈련이 단순 체력 및 기술 연마를 넘어 두뇌 훈련전술 시뮬레이션의 영역으로 확장됨을 의미한다. VR을 통한 전술 시뮬레이션은 팀 전체 전술을 반복 연습하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시간, 체력 등)을 극복하고, 가상의 상대 팀 움직임에 맞춰 여러 전술 옵션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한다 () (). AR 기술은 감독이 전술 보드를 통해 전달하려는 정보를 훈련장에서도 실시간으로 선수들에게 투영시켜, 전술 수행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

물론 이러한 기술 도입이 마냥 간단한 것은 아니다. VR 훈련의 효과를 실제 경기력으로 **전이(transfer)**시키는 문제가 여전히 연구 과제이며 () (), 개인 VR 훈련이 팀 단위의 협응력 향상으로 이어질지 등의 검증도 필요하다 (). 또한 축구는 본질적으로 11명이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스포츠이기에, VR이 지나치게 개인 훈련 중심으로 흐르면 팀워크를 해칠 우려도 지적된다 (). 따라서 기술 개발자와 코칭 스태프 간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며, VR/AR을 *“보조 수단”*으로 적절히 통합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 ().

기술적인 측면 외에도, 축구 규칙 자체의 변화 가능성 역시 미래 전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FIFA와 IFAB는 오프사이드 룰의 해석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있으며(일부는 반자동 오프사이드 VAR 기술 도입 등), 일부에서는 오프사이드 규칙을 완화 또는 폐지하는 파격 실험 리그도 등장했다. 만약 언젠가 오프사이드가 크게 완화된다면, 2–3–5 시절처럼 극단적 공격 전술이 재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VAR의 정착으로 페널티박스 내 수비수의 행동이 제한되면서 세트피스 전술이 변화하고 있듯이, 기술과 규정은 전술 환경을 바꾸어 놓는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교체 인원 5명 허용겨울 개최 등의 새로운 조건 속에 후반 막판 교체 카드 5장을 활용한 압박 강화 전술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축구 전술은 경기 규칙과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진화해간다.

요약하면, 미래 축구에서는 VR/AR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선수들의 준비 과정과 전략 수립 방식에 혁신을 가져와 전술 발전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 그러나 동시에 축구 고유의 창의성과 인간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기술은 수단일 뿐 궁극적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인간 코치와 선수들의 통찰력과 협력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과거 150여 년간 그래왔듯이, 축구 전술은 환경 변화에 부응하여 끊임없이 새롭게 쓰여질 것이며, 기술과 인간의 조화 속에 다음 시대의 ‘인버팅 더 피라미드’가 전개될 것이다.

참고 문헌

  1. Jonathan Wilson. Inverting the Pyramid: The History of Football Tactics. Orion Books, 2008. (축구 전술의 역사에 관한 대표적 서적)
  2. Richard C. Giulianotti et al. “Football: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Encyclopædia Britannica. (온라인 백과, 축구 전략 전술사 개관)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Football – Tactics, Positions, Formations | Britannica)
  3. Jonathan Wilson. “False nine: ancient tactical curveball still retains the power to shock.” The Guardian. 24 Jan 2019. (거짓 9번 전술의 역사와 현대적 사례 분석) (False nine: ancient tactical curveball still retains the power to shock | Football tactics | The Guardian) (False nine: ancient tactical curveball still retains the power to shock | Football tactics | The Guardian)
  4. Keepitonthedeck 축구 블로그.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21 July 2021. (게겐프레싱 전술의 기원과 발전사)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The History of the Gegenpress Ideology — Keepitonthedeck)
  5. The Open Sports Sciences Journal. “Application of Simulation Technology in Football Training.” Vol.18 (2024): pp.1-13. (VR/AR 축구 훈련의 효과에 대한 체계적 리뷰 논문) () ()
  6. Goal.com. “What is tiki-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티키타카 전술의 개념과 구현에 대한 해설 기사)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What is tiki taka? How tactics made famous by Barcelona and Spain work | Goal.com US)
  7. Antonio Conte 전술 사례 – Cain Smith. “How Antonio Conte’s Chelsea Won the Premier League with a Back 3.” World Football Index. 31 Mar 2020. (콘테 첼시의 3백 전술 분석)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Formation (association football) – Wikipedia)
  8. Jaime Orejan. Football/Soccer: History and Tactics. McFarland, 2011. (축구의 역사와 전술을 다룬 학술 서적)
  9. Michael Cox. Zonal Marking: From Ajax to Zidane, the Making of Modern Soccer. Bold Type Books, 2019. (현대 축구 전술 형성에 대한 전문 서적)
  10. Breaking The Lines 축구 전술 매거진. “The Evolution of Soccer Tactics: From Classic Formations to Modern Strategies.” May 22, 2024. (전술의 역사적 발전을 개괄한 아티클) (The Evolution of Soccer Tactics: From Classic Formations to Modern Strategies – Breaking The Lines) (The Evolution of Soccer Tactics: From Classic Formations to Modern Strategies – Breaking The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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